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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이상향의 '에피파니'를 찾아서    

 아카시아도 졌으니 이제 완연한 여름이다. 지난 4월 초 21년만에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와 우리 집 앞산의 푸른 숲과 만났다. 진달래가 산을 붉게 물들이고 연둣빛 봄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림과 긴장감 속에 봄을 만났고 무작정 무언가를 기다리며 마냥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여유와 행복감에 젖었다.

 봄은 역시 환희였다. 나무는 말없이 우리들에게 자신의 변신을 보여줬다. 뻐꾸기가 울고 산비둘기가 울고 까치가 깍깍거리고・・・ 새들이 날아다니며 먹이를 구하고 서로 사랑하며 새끼를 키우며 산에서 열심히 산다. 작가도 그 산처럼 자기 세계를 조용히. 보여줘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싱싱함과 환희를 느낄 수 있도록.

 

 보름달 환한 달빛 아래 잔치를 벌이고 싶다. 삶이 외롭다거나 지친 사람을 불러 모아 달빛을 보여 주리라. 물론 나의 잔치에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을지라도 누구라도 좋다. 아직도 그것을 잊지 않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달빛을 타고 춤을 추고 싶다.

 

 자연은 문명의 발달과 인간의 이기심으로 오염되고 상처받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고발하여 보는 사람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발달한 문명으로 인해 인간성이 상실되고 누구나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며 나름대로 상처받고 있다. 그것은 인류가 해결해야 할 최대의 과제임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 어떠한 상황에서도 오염되지 않는 '순수'를 지켜야 한다. 나는 인간이 꿈꾸며 도달하고 싶어 하는 이상향을 제시하고 싶다. 우리를 구원해주는 어떤 '에피파니 (현현)'를 그려 인간의 마음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

 그래서 내 작품의 제목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고 내 아내는 내 그림에다 <무념무상> <무릉도원>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그 에피파니는 삼각형, 거대한 바윗돌, 여러 개의 돌무지, 고인돌, 얼굴과 사과가 되기도 한다. 나는 내 화면을 생명의 노래로 가득 채우고 싶다.

 

 그렇다면 나의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외로움이다. 지방에 살 때는 환경 탓이거니 생각했는데 지금도 역시 외로운 걸 보면 외로움이란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라 생각된다. 어쩌면 그 외로움은 작품을 하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작가는 그 외로움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팔자인 것이다. 나는 이제야 그 외로움 이란 우주 끝까지 나를 따라다닐 것이고 절대로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란 걸 알았다. 나는 외로우면 술을 마셨다. 그러나 이제는 체념할 수밖에 없다. 그 외로움과 언제나 나란히 가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 역시 외롭고 오로지 그 외로움을 조용히 삼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그 외로움과 투쟁하면서 극도의 긴장의 순간에 도달해야 하며 내 앞에 나를 엄습하고 무료하게 하는 또 하나의 적 '정적'과 싸워 그것을 깨고 늘 다시 태어나야 한다.

 영욕에 매달려 살지 말자. 그림을 왜 그리는가. 내가 좋아서 무작정 시작한 것이 아닌가. 서울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메갈로폴리스이며, 모든 것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나날이 팽창되고 비대해지고 있다. 나도 소외된 지방작가란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이곳에 오긴 왔다. 하지만 서울은 지방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서울에 살면 서울 사람이다?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은 눈이 핑 핑 돌아가게 경쟁하고 있다. 나는 카멜레온처럼 자기 모습을 변신시키는 재주는 없다. 달팽이처럼 내 껍질을 안고 살아가리라. 나는 그 껍질을 바꾸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나 그 껍질 속에서 꿈꾸며 변신하리라.

 

 무작정 전업을 하겠다고 올라와 모처럼 의 해방감 속에서 그동안의 작업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70년대 초의 앵포르멜 작업, 기하학적인 추상, 모노크롬의 반복적 형태의 작업, 오브제를 사용한 실험, 1984년의 슬라이드 작업, 퍼포먼스 바다미술제의 설치작업…. 나도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므로 현대를 수용하고 자연발생적으로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모방이 아닌 나름대로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고자 애써왔다.

 

 나처럼 삶에 대해 불평과 부정을 많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갈등 속에서 '나 자신'을 구제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진 않는다. 그러나 어차피 인간의 창조물은 다른 사람이 보게 되어 있으며 인간은 분명히 사회적 동물이기에 저절로 교류가 이뤄진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서 타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타인을 기쁘게 해주고 나눠줄 수 있는 일, 즉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 죽어서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하기 위해 나의 모든 힘을 바쳐야 한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동안의 숱한 고독과 방황이 헛되지 않은 것 같다. 내 나이 오십이지만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니 그동안 지방에 있어 전달되지 못한 나의 작품세계를 세상에 보여 주려 한다.

 

 지금까지 나의 작업들은 직관에 의한 극도의 순수조형이다. 작품에서 문학성을 배제하고 조형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가기 위해 그림의 형태미, 색채미, 공간의 미를 추구하였다. 다양하고 새롭고 신비한 공간의 창조 우리의 의식을 해방시켜주는 생명의 공간, 우리가 갇혀있는 수많은 벽들을 허물어뜨리고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이기를 원했다.

 

 86년경부터의 인쇄물 작업들은 90년도의 자연풍경 위의 작업들로 이어져 지난해 전시되었다. 현대는 정보사회이며 대량전달로 인해 모든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다. 나는 인쇄기가 가져다주는 선명함과 정확성에 인간의 수공미를 가미하여 작업하고 있으며, 나의 작품의 배경이나 내용물로 어떤 것이든 마음대로 선택하여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내 화면에 구체적인 형상물, 고인돌, 사과, 얼굴, 하트 등이 등장하였다. 그것은 획일화된 문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생명력을 전달하는 기호이다.

 그동안 좋은 우물을 파기 위해 여러 곳을 뚫어보았다. 이제는 그동안의 많은 모색들을 바탕으로 나의 작품세계를 다지는 시기이다. 땅을 파헤치고 그것을 고르고 고랑을 만들어 나의 밭을 반듯하게 다듬어야 할 때이다. 아직도 나의 환상의 세계는 시들지 않는다. 나의 에너지는 식지 않고 우주를 향해 뜨겁게 방출되고 있다.

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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