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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와 에너지에는 각기 그들 만의 소리가 있다. 나는 그 소리를 전달하는 메신저이고 싶다. 나의 작품은 연주를 하며 춤을 추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신명(神命)으로 삼매(三昧)에 들어 또 다른 나와 합작으로 완성해간다. 연주와 춤, 노래, 글, 그림. 이 모든 행위는 나에겐 똑같은 하나이다. 그 하나가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음악으로 완성된다.

내 작품의 겉은 눈으로 보고 내 작품의 속은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매번 내가 또 다른 나를 부르는 데는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부터 시작한다. 나에게는 음악과 미술은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가 되는 예술 행위다.

예술가는 몸이 늙어 죽지 않는다. 정신이 멈추는 순간 죽은 것이다. 예술은 나를 가장 속이는 놈이다. 예술은 너를 가장 속게 하는 사치다. 예술은 잘 속이고 잘 속게 하는 것이다. 예술은 많이 속이고 많이 속을수록 행복하다.

지리산 봄, 너의 싱그러움이 얄밉더라. 지리산 여름, 너의 젊음이 부럽더라. 지리산 가을, 너의 화려함이 부럽더라. 지리산 겨울, 봄 여름 가을 그 틀에 모든 허물을 안고 내 몸속에 자리 잡는구나, 劫(겁).

땅을 밟고 하늘을 보고 바람 소리를 듣고 공기를 마신다. 지리산, 수천 년 너의 모든 것, 하나도 뺌 없이 훔쳐 손바닥만 한 이곳에 가둬 영원히 함께하려는 나는 세상 가장 큰 도둑놈.

수많은 낙엽이 수백 일 동안 온몸을 녹여 동판에 劫(겁)을 새긴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슬쩍 훔쳐 그들의 진혼곡을 세상을 향해 두드렸을 뿐이다.

나는 너를 1000일 동안 수중 궁궐에 넣어 온몸의 세상 劫(겁) 다 씻길 때까지 등을 밀어줬을 뿐 이제 그 소리는 영겁의 세월 스스로 울리리.
널 지리산 흙 속에 묻은 지 몇 년 劫(겁) 세월 찌든 때 거름이 되고 새로운 영혼의 진혼곡 온몸으로 진동한다.

산산이 쪼개져 바위가 되고 굴러 굴러 돌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 좁쌀 돌멩이로 내 발끝에 차이면서도 어찌 나를 단 한 번 쳐내지 않고 지리산 일, 월, 화, 수, 목, 금, 토 하늘의 눈빛을 내게 안겨 주는지 수억 년 세월을 맞이해야 네 맘 알려 나. 나도 일부 너에게 녹여 본다.

말 안 해도 못 본 척해도 너는 다 알더라. 내가 뭘 원하는지 단 한 번도 남기지 않고 주더라, 이유도 조건도 없이 다 주더라. 나는 당연지사 받기만 하더라. 나는 너의 소리를 오늘 새벽 꿈속에서야 알아차렸다. 하늘, 땅. 너는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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