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보다 - 정창균의 명경지수(明鏡止水)
박정수 : 미술평론가
작품의 명제이기도 한 정창균의 ‘명경지수(明鏡止水)’는 동양 정신에서 말하는 무위(無爲)에서 한층 진보된 현대사회의 혼탁성에 대한 깨끗한 정신을 추구한다. 맑은 거울은 사람의 심성과 살아가는 가치를 본래의 모습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철학적 의미이다. 때문에 책을 그리기 보다는 책 위에 있는 기물을 그리고, 책과 기물보다는 거울에 비춰진 상태에 집중하는 방식을 취한다. 외적으로 보면 정물을 그대로 옮겨낸 듯하지만 개인의 감각과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한국인 특유의 감성적 미술로 환원된다.
움직이지 않는 자연을 의미하거나 자연의 경관을 실내에서 그려내는 일반의 정물화와는 달리 실재와 가상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릇에 담긴 과일들, 책 위에 놓인 꽃들을 보통의 정물화라 이해하면 그의 작품에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미술 시간에 억지로 그려보았던 과일과 꽃, 화병 따위의 상황과 비견해서는 곤란하다. 그의 정물화는 단순히 자연물을 연출하여 그려낸 것이 아니다. 보이는 것을 그리고 거울에 비춰진 환영을 재차 그리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자신을 바라보는 타자 속의 자신이 하나임을 역설적으로 표현해낸다. 아무리 잘 그려낸 꽃이라도 진짜 꽃이 아니듯 맑은 거울 속의 꽃 역시 진짜가 아니다.
변별력 있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자연스러운 연출보다는 책이나 생소한 기물 위에 꽃이나 과일들을 배치한다. 자연스러운 구도의 감상보다는 정신적 공간을 중시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주변의 사물을 통해 내면적 감성과 감정을 포함 시켜 현대인들의 정신적 피폐함과 일상의 위태로운 상황을 정화 시키고자 노력한다. 때문에 자연물과 흡사하게 모방해내는 극사실과는 적당한 간극이 유지된다. 거울에 비춰진 정물에는 전통적 형이상학적 담론 속에서 詩·文·書·畵를 비롯한 전체 문화를 보편적 정서로 하는 한국인의 기분과 감성이 들어있다. 감각적으로 그려낸 정물화가 아니라 무위(無爲) 혹은 맑음을 추구하는 진정한 마음으로서의 정신성이 포함되어 진 감성의 기명절지(器皿折枝)로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의 전통적 화법(畵法)중에 기명절지(器皿折枝)란 말이 있다. 조선 후기부터 본격화된 정물화의 영역이다. 그림의 소재로는 선비들이 주로 사용하던 책장이나 문방구류, 고가구 등을 그리면서 거기에 책과 전혀 상관없는 길상적(吉祥的) 의미를 지닌 꽃이나 과일들을 첨가 시켰다. 과거 선비가 자신의 서재를 꾸미거나 등과, 다산, 부귀 등을 생각했던 것이 본래의 책가도라 한다면 정창균의 명경지수는 혼탁한 정신의 맑음을 추구하는 현대적 책가도라 부를 만하다. 보통 사람들과 쉽게 소통되는 그림 속에 오묘한 철학 정신이 버무려져 맛있는 감성의 영역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내는 다양한 정신적 영역의 확장이다. 보이는 것에서 출발하여 보이지 않는 감성의 법칙을 찾아내어 본래적 감성을 추구한다. 기물과 자신의 대립에서 오는 상태를 인정하고 정신성의 법칙을 공부해 가고 있는 동양 정신이다. 모방 된 기물들이 거울을 통해 또다시 모방하면서 대상의 시간을 정지시킨다. 거울에 비춰진 공간은 무한의 공간이 된다.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것으로 표현되나 개인적인 것을 넘어 일상의 감성이 내포된다. 때문에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직접적 관심이 유도되고 있다.
정창균만의 독특한 특징 중의 하나는 시각적 자연스러움을 수용하면서 無爲自然과 같은 정신적 구도를 잘 발생시킨다. 사과나 장미꽃 등과 기물에 반쯤 가려진 두꺼운 책들을 통해 숙성된 정신을 그려낸다. 거울의 무한한 여백의 공간위에 놓여 눈에 보이는 대상으로부터 지극히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를 만끽한다. 감상과 상상을 위한 여백의 공간을 거울로 대치한다.
최근 팝아트나 극사실주의, 가벼운 이야기꺼리가 포함된 가벼운 작품들이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관심이 그쪽에 몰려있는 탓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창균의 정신적 활약은 새롭게 드러난다. 현대미술에서 말하는 조형과 관련된 직관과 이미지 번역의 문제보다 화면에 숨겨진 감정과 획득되는 정서의 작용에 의해 음미 된다. 공간구성이 독특하게 도드라져 자신의 감성과 사상체계에 따라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적 긴장 관계를 성립시키고 있다. 같은 대상을 모방하더라도 모든 모방은 화가의 단초에 의해 새롭게 단장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정물화로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한편으로는 소통을 위한 보통의 정물화와의 타협점을 찾아낸다. 그려지는 대상의 속성은 유지하면서 대상과의 소통, 더 나아가 대중의 정신적 담론을 야기 시켜 나간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것이 기물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겨내면서 자신의 감성과의 대립점을 창조적으로 변형시킬 조형 요소가 여기에 있다.
장자(莊子)에 따르면 ‘거울이 흐려 보이면 먼지가 앉은 것이지만 맑게 보이는 것은 먼지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오랫동안 현자(賢者)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맑아져 허물이 없어진다.’ 하였고 덕충부편(德充符篇)에는 ‘사람의 모습을 흐르는 물에는 비춰볼 수 없지만 고요한 물에는 모습을 비춰볼 수 있다. 때문에 고요한 것은 맑기를 바라는 모든 것은 맑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정창균이 추구하는 예술관의 출발점을 여기에 두고 있다.